사람들은 신화와 전설이 살아 숨 쉬는 그리스를 서양 문명이 태어난 고향이라고 말한다. 아폴론이 태어난 델로스 섬과 제우스가 살았던 델포이, 포세이돈의 신전이 있던 수니온 곶에 이르기까지 어느 곳을 가더라도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살던 매력적인 유적지와 흥미로운 이야기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를 찾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찾아가는 곳이 있다. 바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다. 아크로폴리스는 오늘날 서양 문명의 기틀을 마련한 중요한 장소다. 서양 문명의 뿌리가 되는 고대 그리스의 신화, 정치, 문화가 태어난 곳으로 다채로운 문명의 흔적들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스 어로 ‘아크로’는 높은 곳, ‘폴리스’는 도시 국가란 의미를 갖고 있다. 즉 아크로폴리스란 높은 언덕에 세워진 도시를 말하는 것이다. 이름대로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 잡고 있다. /편집자 주 ------------------------------------------------------------------------ 우리 친구부부 일행은 피레우스 항구에서 리무진 버스편으로 아테네로 이동했다. 근대올림픽이 열렸던 스타디움과 내셔날 가든, 제우스 신전, 국회의사당, 신타그마 광장을 거쳐, 드디어 아크로폴리스(Acropolis)를 만날 수 있었다. 1987년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있는 아크로폴리스 위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Parthenon)`이 여전히 위풍당당한 모습을 살짝 드러내고 있다. 우리 일행은 아크로폴리스 정상을 향해 걸음을 재촉한다.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르다 만난 디오니소스 극장. 이 극장은 BC 6세기경 건설된 극장으로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 신에게 바쳐진 원형 극장이다. 비록 지금은 많이 부서지긴 했으나 당시 1만 7천여명을 수용할 수 있었을 정도로 큰 규모의 극장이었음을 알아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디오니소스 극장을 떠나 계속되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 길의 끝에는 역시나 말할 수 없이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왜 그리스인들이 신들을 숭배하기 위한 신전을 이곳에 지었는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에 힘을 내어 언덕을 오르자 이번에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우리를 반긴다. 디오니소스 극장보다는 보존이 훨씬 잘되어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곳은 현재에도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오르는 길목에는 음악당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울타리가 세워져 있었다. 특히 이 음악당은 성악가 조수미씨가 공연한 장소로 우리일행에게는 뿌듬함을 느끼게 한다. 그런 기분으로 또 언덕을 올랐다. 힘들긴 했지만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다. 우리친구 일행 앞에는 아크로폴리스의 관문인 프로필라이아(Propylaia)가 서있고, 뒤로는 아테네의 전경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웅장한 아크로폴리스의 출입구 프로필라이아를 지나자, 드디어 파르테논(Parthenon)신전이 눈앞에 그 위엄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동쪽과 서쪽에 8개, 남쪽과 북쪽에 15개씩 솟아 있는 기둥이 신전을 에워싸고 있다. 파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거대한 기둥들을 보면, 당시 신을 믿던 사람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기둥과 지붕 사이를 보면 신화와 아테나 여신을 기리기 위해 4년마다 열리는 축제에 관련된 조각이 새겨져 있다. 신전을 처음 건설할 당시에는 많은 조각이 새겨져 있었지만 전쟁과 자연재해로 파괴되고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멋진 조각들이다. 파르테논 신전이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지금처럼 바닥과 기둥, 기둥과 지붕 사이의 프리즈라는 공간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지붕과 실내가 완벽하게 갖추어진 건축물이었다. 가운데에는 금과 코끼리 뼈를 이용하여 만든 높이 12m의 아테나 여신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런 멋진 건축물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 것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과 베네치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고 있던 나라는 알라신을 숭배하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이었다. 오스만 투르크 군대는 신전을 무기와 화약 창고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1687년 베네치아 군대가 오스만 투르크 군대를 공격하면서 아크로폴리스 지역에 마구 폭격을 퍼부었다. 많은 무기와 화약이 보관된 파르테논 신전에도 폭탄이 떨어지면서 엄청난 폭발이 발생했다. 그로 인하여 파르테논 신전을 덮고 있던 지붕과 실내가 사라지고 바닥과 기둥, 지붕 일부만 남아 있는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지금 파르테논 신전은 내부를 복원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과거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니케 신전을 원래의 모습으로 완전하게 복원했던 경험이 있어, 파르테논 신전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에서는 기둥과 지붕의 일부만 남아 있는 지금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완벽한 복원을 포기하고 일부만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테네의 수호여신 아테나 여신에게 바친 신전이라는 파르테논신전은 도리스식 건축물 중 최고의 걸작이라는 칭호가 절대 아깝지 않았다. 그리스에서 유일하게 바닥과 기둥, 지붕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대리석만으로 지어진 건축물이라고 하는데, 그 무거운 대리석들을 이곳까지 옮겨오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 고생해서 지어졌건만 아쉽게도 전쟁으로 인해 건축물 대부분이 파괴되었을 뿐 아니라 그 안의 조각들까지 대부분 빼앗기는 바람에…현재는 영국 대영박물관에서 빼앗긴 대리석의 일부를 전시하고 있다. 아테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이곳은 아테네는 말할 것도 없고 저 멀리 에게해까지 바라보이는 아테네 최고의 전망대라지만 아쉽게도 촉박한 일정에 쫓겨 이렇게 멀리서나마 바라보는 것에 만족해야했다. ▶ 내셔널 가든(National Garden)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 중심지로서 광장 주변에 여행사와 안내소를 비롯해 환전소, 우체국 등이 있으며 아테네 여행의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광장 맞은편으로 보이는 큰 건물이 바로 국회의사당. 의사당 앞에서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기도 해 볼거리를 선사한다. 또 국회의사당 옆에는 국립 정원이 넓게 조성되어 있다. 원래 왕의 개인 정원이었지만 지금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 시민들과 여행자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신타그마 광장에서 국회의사당 쪽으로 조금 걸어올라가면 바로 `국립공원`이 나타난다. 아테네 여기저기 아담한 공원들이 꽤 있긴 한데, 공원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분위기도 그렇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화로운 유럽의 공원과는 거리가 좀 멀어 보이는게 사실이다. 아테네 민박집 주인이 조언한다. `변태(!)`들이 많아 어두워진 후엔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이라고 귀뜸한다. 어찌됐든 밝은 낮의 이 곳은 아이들과 함께 산책 나온 가족들은 물론 열심히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나름 공원다운 공원 이었다. 국립 공원 건너편에 `제우스 신전` 있다. 그의 딸인 `아테네 여신`을 모신 신전인 `아크로폴리스`에 비하면 한 없이 초라한 모습이다. 사실은 104개의 큰 기둥들로 구성된 거대한 신전이었는데, 그 중 많은 것들이 유실되고 지금은 15개만이 남아있다. ▶ 근대 올림픽 스타디움 신타그마 광장에서 약10분거리에는 근대 올림픽 스타디움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1896년 여기서 제1회 근대올림픽이 열렸다. 원래 이곳은 기원전 331년에 아테네 대축제 경기장으로 만들어 졌으며 로마시대에는 투기장으로도 사용되었다. 이후 복원을 거쳐 올림픽도 열릴 수 있었다. 내부에는 들어갈 수 없지만 밖에서도 충분히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5만여 개 좌석이 경기장 주변으로 둘러싸고 있고 말발굽 모양 트랙이 눈길을 끈다. 그리스 신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더해졌다면 아마 몇배로 즐거웠을텐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도 컸다. 하지만 이런 의미있는 장소에 서있다는 것이 여간 뿌듯한 일로 오랜 기억속에 남아 있을 것 같다. 글·사진 / 이인식 편집국장 ▶ 여행 팁◀ 해 질 녘의 파르테논 신전 아크로폴리스에서는 역시 파르테논 신전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파르테논 신전은 시간과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데 신전의 다양한 모습을 감상하려면 오후에 찾는 것이 좋다. 파르테논 신전에 도착하면 먼저 북쪽에서 옆으로 이동하여 햇살에 드러난 웅장하고 세련된 기둥을 감상한 뒤, 동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지붕 아래에 새겨진 조각을 감상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작품은 파손되고 일부만 남아 있지만 그리스 조각과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이디아스의 작품으로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걸작이다. 북쪽과 동남쪽을 둘러본 뒤에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신전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여유롭게 신전을 감상해 보자.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은 석양에 반사된 신전의 모습이다. 평소에는 회색과 흰색에 가까워 보이는 대리석이 석양이 비치는 오후 시간이 되면 옅은 붉은색을 띠는데 분위기가 정말 황홀하다. 신전을 감상한 뒤에는 고개를 돌려 서쪽을 바라보자. 멀리 아름다운 피레우스 항구가 눈앞에 펼쳐진다. 이런 광경을 감상하기 위해 일부러 아크로폴리스 유적지가 문을 닫을 무렵에 입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