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어로 ‘계속해서 오라’라는 의미를 가진 베네치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도시 가운데 한 곳이다. 미로와 같은 골목만큼이나 신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베네치아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말뚝 위에 건설한 11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다. 200개가 넘는 운하를 중심으로 섬과 섬을 연결하는 400여 개의 다리와 수많은 골목, 개성 넘치는 건축물로 이루어져 도시 전체가 거대한 박물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베네치아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우선 신비감을 준다. 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오가는 활발한 무역으로 부를 쌓아 다양한 건축물을 짓고, 그 안을 진귀한 예술품으로 채워 놓았다. 각 계절마다 펼쳐지는 흥미로운 문화 행사와 수시로 변화하는 황홀한 경치도 빼놓을 수 없는 베네치아의 자랑거리다. /편집자 주
베네치아를 찾아온 사람들은 저마다 가고 싶은 곳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발걸음을 재촉하는 곳이 바로 산 마르코 광장이다. 그곳에 베네치아를 상징하는 산 마르코 대성당이 있기 때문이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서기 828년, 성인 마르코의 유골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와 도시의 수호 성인으로 모시게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864년에 처음 세워졌는데 10세기 후반에 일부가 불에 타 버렸다. 11세기에 대부분 복원되었고 일부는 13세기와 15세기에 증축한 것이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864년부터 15세기 사이에 점차적으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산 마르코 대성당은 중세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건물이 웅장하고 뛰어난 예술품으로 장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양과 서양 건축의 장점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베네치아 양식이란 새로운 건축 양식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섯 개의 거대한 돔과 입구 정면의 화려한 모자이크, 여러 가지 색상의 기둥과 대리석 조각상은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건축 기법과 재료를 이용한 것이고, 정문 위에 세워진 성 마가의 말 조각과 입구를 장식한 조각은 로마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한 성당 안에 장식된 여러 조각상은 로마와 지중해 연안의 나라들에서 구입하거나 전쟁 때 빼앗은 것들이다.
이처럼 산 마르코 대성당은 터키, 이집트를 비롯한 동양의 건축과 로마, 지중해의 건축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동서양의 건축 기법과 장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웅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화려하면서도 우아하여 훗날 서유럽 건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산 마르코 광장과 주변에는 독특한 건축 양식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많다. 베네치아는 여러 양식의 건축물이 물 위에 떠 있는 수상 건축 박물관 같은 곳이다.
현재 박물관으로 개방되고 있는 두칼레 궁전은 베네치아 고딕 양식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반복적인 아치와 회랑이 베네치아 고딕 양식의 간결미를 잘 보여 준 건축물로 물의 도시를 지배했던 권력자들이 살았던 곳이다. 지금은 수많은 그림과 유물이 보관, 전시되고 있다. 두칼레 궁전의 안뜰과 입구, 그리고 건물 벽에 장식된 조각들은 예술적인 가치가 뛰어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유화인 틴토레토의 (천국), 산소비노의 조각 (마르스) 상과 (넵투누스) 상이 유명하다. 그리고 두칼레 궁전과 감옥 사이에는 운하를 연결해 주는 다리가 있다. 죄인들이 감옥에 갈 때 이 다리를 건너며 탄식했다고 해서 ‘탄식의 다리’라고 불린다.
산 마르코 광장 남서쪽인 대운하 지역에는 베네치아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 있다. 1630년 베네치아에 페스트가 유행하면서 도시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4만 7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페스트로부터 목숨을 보존한 시민들이 성모 마리아에게 감사를 표시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 이 성당이다.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은 56년 동안 지어졌는데, 팔각형의 바닥 위에 세운 커다란 돔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 돔은 베네치아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성당 안도 다른 곳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럭비공 모양을 하고 있다. 성당 안쪽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조각과 성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페스트로부터 베네치아를 보호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당 이름 중에 있는 ‘살루테’라는 말도 ‘건강과 구제’라는 의미로 페스트와 관계가 있다.
그 밖에 산 조르조 마조레 섬에 있는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은 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 양식이 멋진 조화를 이룬 건축물이며, 토르첼로 섬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아순타와 산타 포스카 성당은 초기 기독교 양식과 후기 비잔틴 양식을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한때 베네치아를 점령했던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산 마르코 광장에는 매력적인 건축물과 낭만적인 공간이 많. 특히 플로리안 카페와 해리즈 바는 유명 인사들이 많이 찾았던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괴테 같은 문학가들은 베네치아에 올 때면 어김없이 산 마르코 광장의 플로리안 카페를 찾아 손님들과 밤새 토론하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18세기 최고의 바람둥이로 불리던 카사노바도 플로리안 카페를 무대로 수많은 여성들과 사랑을 속삭였다.
또한 광장 서남쪽 모퉁이에 있는 해리즈 바는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비롯하여 수많은 작가들이 자주 찾았던 곳으로 지금도 그 작가들이 사용했던 테이블과 방명록이 보관되어 있다.
베네치아에서 꼭 한 번은 가 보아야 할 곳이 산 마르코 광장과 연결된 골목들이다. 이 골목을 거닐면 늘 새로운 풍경이 우리를 반기기 때문이다. 뱃사공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곤돌라를 타는 관광객, 저녁놀이 비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드리아 해, 파도에 흔들리는 곤돌라,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낚는 여행객들이 연출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멋진 시인이나 소설가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독자 여러분도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통해서 알고 있겠지만 베네치아는 미로가 떠오를 만큼 복잡한 골목으로 이어져 있다. 너무 복잡하여 때로는 관광객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골목들을 걷다 보면 유람선을 타고 여행하거나 드넓은 광장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진정한 베네치아를 만날 수 있다.
작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부도 만날 수 있고, 골목에서 레이스를 뜨고 있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도 만날 수 있다. 그뿐이 아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은 짐을 싣고 이동하는 뱃사공과 광장과 골목을 놀이터 삼아 놀고 있는 아이들도 만날 수 있다. 베네치아 사람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골목길이다.
베네치아는 사계절 내내 흥미로운 행사가 열리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독특한 가면을 쓰고 광장과 골목을 누비는 베네치아 카니발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미술 행사인 베네치아 비엔날레, 도시 전체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곤돌라 축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축제인 베네치아 영화제, 크고 작은 음악회 등 쉴 새 없이 축제가 열리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베네치아다운 축제는 가면을 쓰고 펼치는 카니발과 곤돌라 축제라고 할 수 있다.
베네치아 카니발은 약 800년 전 베네치아 공화국과 아퀼레이아 대주교의 관할국 사이에 벌어졌던 전쟁을 기념하기 위하여 시작된 축제다. 처음에는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하기 위한 행사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민속 공연과 곡예사들이 펼치는 공연이 이루어졌고, 오늘날의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다.
처음 축제가 시작될 당시에는 베네치아는 엄격한 신분 사회였다. 따라서 축제가 열리는 기간만큼은 신분의 차이 없이 누구나 평등하게 축제를 즐기기 위하여 가면을 쓰게 되었다.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너 나 할 것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자유스러움은 베네치아가 최고의 무역 도시이자 자유 도시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흔히 곤돌라를 타고 펼치는 퍼레이드로 알려진 곤돌라 축제는 베네치아의 슬픈 역사에서 출발했다. 베네치아의 세력이 쇠약할 때는 여러 국가와 도시에서 베네치아로 몰래 침입하여 처녀들을 강제로 납치해 가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베네치아 청년들이 납치된 처녀들을 구출하여 돌아왔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시작된 축제다. 곤돌라 축제를 보면 해양 왕국 베네치아의 다양한 문화와 단합된 힘을 엿볼 수 있다. 각 직업별로 전통 복장을 입은 시민들이 퍼레이드를 펼치고, 개인과 마을 단위로 곤돌라 경주가 벌어진다. 물의 도시를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하다.
베네치아는 동서양을 이어 주는 다리 역할을 한 물의 도시다. 베네치아를 건설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 후손인 베네치아 상인들은 목숨을 걸고 거친 파도를 넘어 동서양을 오가며 무역을 하고 문화를 축적하여 오늘날 우리들이 볼 수 있는 물의 도시를 건설하였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모험심과 개척 정신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베네치아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베네치아는 조금씩 아드리아 해 속으로 가라앉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바닷물의 높이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라면 상당히 많은 부분이 물속에 가라앉아, 배를 타고 다니며 베네치아의 흔적을 바라봐야 할지도 모른다.
이런 현상은 물의 도시인 베네치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지구 전체가 지금 환경 오염과 온난화 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소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글·사진 / 이인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