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기자의 여행이야기 > 부다페스트 편 파리에 센강이 있다면 부다페스트에는 다뉴브강이 있다. 알프스 북부에서 발원한 다뉴브강은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세르비아 등을 두루 적시며 문화와 물자 교역의 중심지 구실을 해온 동유럽의 젖줄이다. 여느 도시가 그렇듯 강 주변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지만 부다페스트 만큼 과거의 모습을 보전하고 있는 곳도 드물다. 마치 옛 마을 속에 사람들이 그냥 들어와 사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는 부다와 페스트가 합쳐진 도시로 다뉴브강이 부다와 페스트를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다. 부다는 구릉지대로 고급 주택지인 반면 페스트는 상업지역이다. 유럽 내 다른 도시를 흐르는 강과 비교해 폭이 꽤 넓은 편이라 어디에서나 시원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다. 그래서 유럽인들과 헝가리인들은 부다페스트를 가리켜 다뉴브의 장미, 다뉴브의 진주와 같은 찬사를 보낸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를 두고 최고라는 찬사를 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지만 부다페스트 시민들의 도시 사랑은 매우 각별하다. /편집자 주 천년 역사를 지닌 도시답게 부다페스트에는 로마네스크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이 두루 남아 있어 이방인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건축에 문외한이더라도 이 박물관 같은 도시 안에 있으면 그 일부가 된 듯하다. 도심을 돌아보는 데 가장 유용한 수단은 단연 메트로와 트램. 우리로 치자면 메트로는 지하철.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해 건설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지하철이다.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럽대륙에서는 최초인 셈. 헝가리인들이 가장 큰 자부심을 갖는대목이기도 하다. 1호선이 오페라극장과 리스트기념관, 영웅광장 등 주요 명소를 연결한다. 빌라모시라고 부르는 트램은 부다페스트의 또 다른 명물. 이용 방법이 간단해 여유있게 시내 경치를 감상하는 데 그만이다. 관광안내센터에 가면 트램 노선도를 쉽게 구할 수 있다. 대부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들르게 되는 명소는 왕궁과 세체니 다리. 헝가리 역사라고까지 불리는 왕궁은 13세기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위풍당당하다. 헝가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위용 넘치는 왕궁과 마주하고 적지 않은 감명을 받기도 한다. 고도 167m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올라갈 때는 모스크바광장에서 출발하는 성 버스를 이용하거나 세체니 다리 옆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사실 오늘날 볼 수 있는 왕궁은 13세기 이후 전쟁과 화재로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 1950년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재탄생한 것.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곳곳에서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북쪽 벽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박힌 무수한 탄환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 왕궁이 헝가리의 역사라면 세체니 다리는 부다페스트의 상징이다. 다뉴브강에 최초로 세워진 다리로 밤에 불을 밝히는 전구가 멀리서 보면 사슬처럼 보인다고 해 세체니(사슬이라는 뜻)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에 있는 온천, 대중목욕탕, 찜질방, 그리고 사우나를 모두 합치면 그 수가 얼마나 될까? 헝가리인들은 한국인들처럼 대중목욕을 즐긴다. 헝가리 전체에 걸쳐 1천 개에 달하는 온천이 있고, 수도 부다페스트만해도 크고 작은 목욕탕이 100곳이 넘는다는 게 거짓말이 아니다. 대부분의 서유럽인들은 관광보다는 ‘휴식’을 위해 가까운 동유럽 헝가리를 찾는다. ‘웰빙’(Well Being), 혹은 ‘웰니스’(Wellness)의 삶이 점차 보급되면서 여행도 하고 휴식도 즐기는 부다페스트 온천여행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온천(Thermal Bath)의 기원은 약 2천년전 고대 로마인들이 로마식 공중목욕탕을 시작한 것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16세기와 17세기에 걸쳐 중유럽에 막강한 지배력을 가졌던 오스만 터어키 제국의 터키인들이 로마인들의 온천을 터키식으로 더 발전시켰고 그 명성은 지금까지 ‘터키탕’이라는 이름으로 계속되고 있다. 헝가리인들은 뜨거운 목욕, 즉 온천의 의학효과를 아직도 강하게 믿고 있다. 헝가리인들의 온천 사랑은 로마와 터키의 지배를 받으면서 독창적으로 가꿔온 문화라고도 감히 말할 수 있는데, 그야말로 헝가리의 온천은 매우 길고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에는 헝가리 온천의 ‘황금시대’로 세체니(Szechenyi), 겔레르트(Gellert)의 아르누보 양식의 세련된 온천 등이 문을 열었다. 특히 부다페스트를 대표하는 온천호텔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겔레르트 온천은 가장 오래된 헝가리의 온천호텔로 아르누보의 보석이라 불린다. 특히 이곳은 온천뿐 아니라 아웃도어 수영장, 누드 베이딩 갑판까지 갖추고 있어 늘 관광객들로 붐빈다. 부다페스트를 빛내는 일등 공신은 단연 야경이다. 파리의 센강 야경이 에펠탑과 노트르담 성당을 중심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진 요란한 야경이라면 부다페스트 야경은 동양화의 여백처럼 적당히 놓여져 있는 역사적인 건축물과 자연경관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부다 언덕에 세운 부다 왕궁의 우람한 모습과 부다페스트의 상징인 세체니 다리를 비롯한 다양한 건축기법을 이용한 다리들, 런던 건축협회 회원이 만든 신고딕양식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회 의사당, 어부의 요새, 다뉴브 강변에 우뚝 솟은 돌산인 겔레르트 언덕, 유럽 최대의 온천 도시를 상징하는 겔레르트 온천 호텔, 중세 150년간의 오스만 터키 지배하에 만들어진 터키식 온천, 그리고 성당들과 온천수가 쏟아져 나오는 마르기트 섬 등이 다뉴브 강변을 따라 놓여 있다. 특히 세체니 다리는 영화 글루미 선데이에 가장 많이 나왔던 장면이기도 하며 KAL기 폭파범으로 알려진 김현희의 자서전에 나오는 ‘사자다리’이기도 하다. 실제로 자살을 많이 했다는 초록색 자유다리는 헝가리 경제대학과 명물 겔레르트 온천호텔을 연결하고 있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영웅광장에 이르는 가로수 거리인 ‘안드라시’ 거리는 예술인들이 모이는 장소로 오페라하우스와 헝가리 출신 리스트의 기념관과 음악학교가 있다. 그리고 이 거리 밑엔 1896년에 만들어진 유럽 대륙 최초의 지하철이 아직도 다닌다. 다뉴브 강변에서 가까운 곳에 위치한 ‘바찌우짜’라는 보행자 전용 중심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저렴한 노천카페에서부터 인터넷카페, 호텔, 식당, 선물가게 등이 이어지고 가장 마지막에는 19세기에 만들어진 중앙 시장을 만나게 된다. 중앙시장에선 과일을 비롯한 농업국가 헝가리를 대표하는 농수산물에서부터 다양한 것들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헝가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문화선진국이다. 음악가 리스트가 태어난 나라이기도 하며 온천을 이용한 건강 요법의 선진국이기도 하며 집시음악으로 잘 알려진 나라이기도 하다. 글·사진 / 이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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