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도전적인 질문을 하고 싶습니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자주 들은 소리입니다. 소위 ‘의식’ 이라는 소리입니다. 제가 굳이 소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제게는 그 소리가 이상하고 맞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주인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말은 자신이 삶의 주체라는 뜻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이외의 다른 환경에서 쓰이는 주인의식이라는 표현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기업가가 노동자들에게 주인의식을 지니고 열심히 일하라는 말을 한다면 맞는 말일까요? 이 말은 기업가가 기업을 노동자들에게 양도해야만 가능한 말입니다. 노동자가 기업의 소유주가 된다면 당연히 노동자 들은 주인의식을 지니고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업가가 기업을 여전히 소유하고 있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주인 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을 갈취하겠다는 속셈입니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의식은 노동자로써의 의식입니다. 교회가 평신도들에게 주인의식을 강조하고 강제한다면 올바른 것일까요? 하느님 백성으로써의 의식이 아닌 다른 모든 의식은 거짓이고 속임수입니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에 맞는 올바른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의식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성찰해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선택이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사람은 목표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목표가 삶의 최종 도달점은 아닙니다.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삶을 지속시킬 수 있는 힘을 주는 가치입니다. 가치에 집중하는 사람은 언제나 현재를 살아갑니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환상에 빠지지 않고 현실의 상태를 직시합니다. 의식과 가치는 하나입니다. 둘로 나뉘지 않는 하나로 통합됩니다. 올바른 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올바른 가치를 세울 수 있고,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고통앞에서 중립은 없다. 교황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중립은 중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용하는 중립이라는 말은 중도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도는 양 가래길 사이의 길입니다. 선택의 상황에서 선택하지 않고 양 쪽을 곁눈질로 바라보는 것, 자신의 이득에 도움이 되는 어느 한 쪽 길을 선택하려고 기회를 엿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선택의 상황에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길이 무엇인지 곁눈질을 하자는 것입니다. 올바른 의식을 지닌 사람은 가치에 따른 선택을 합니다. 그래서 중립을 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용을 선택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 올바른 의식을 지니고 있는지요? 타인에 의한 또는 거대한 권력에 의해 길들여진 의식을 지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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