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선비라면 양반으로 통칭하고 거드름만 피우는 샌님으로 알고 있다.
그 모진 사화(士禍)와 당쟁(黨爭) 속에서도 목숨을 내건 상소가 추상같았고,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분연히 일어나 앞장선 것도 선비들이었다.
모름지기 선비는 자기 몸을 먼저 닦고 제 집안을 가지런히 한 연후에 벼슬길에 나아갔다. 이는 당시 세상에 처한 선비들의 본분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래서 선비는 벼슬길에 나아가도 천하의 걱정을 앞세운 후에야 자신을 걱정했고, 천하의 안락을 누린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안락을 헤아렸다.
맹자의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심지를 잠꼬대에서도 되뇌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선비는 선비 다와 야지 선비다. 선비라고 선비인체 해서는 선비가 아니다.
거기에는 오만이 앞서 미움을 사기 십상이다. 그래서 선비는 벼슬길에 나아가도 권세와 이득에 빌붙어 사리사욕이나 엿보는 기회주의 조막손이 아니었다.
일찍이 사마천도 “권세와 이득으로 야합한 자는 그 권세와 이득이 다하면 교분이 성글어진다”고 했다. 씹어서 먹여주듯 일러준 만고의 교훈이다. 또한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를 위해서는 죽음까지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벼슬아치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알아주는 상사에게는 신명을 바치는 법이다. 제가 제인 양 내세우는 벼슬아치 주위에는 사람이 모여들지 않는다.
선비는 그 구실 또한 대단했다. 나라를 바로잡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도, 정의를 높이고 명분을 밝힘도 선비의 구실이었다. 올곧은 선비는 사약을 받고도 의연히 임금을 향해 북배(北拜)를 했고, 자신의 시신을 쌀 거적을 메고 가 바른말을 간한 목숨을 내건 선비, 백골이 흙이 돼도 불사이군(不事二君)은 할 수 없다는 충절의 선비가 있었는가 하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에도 의젓이 “황천 가는 길에는 주막도 없을 텐데 오늘밤에는 뉘 집에서 묵고 가겠느냐”고 죽음 앞에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너스레를 떨고 간 꼿꼿한 선비도 있었다.
본의 아니게 덧없는 동서분붕(東西分朋)에 휘말리면서 서인의 영수(領袖)로 몰려 고단한 삶을 살다간 율곡은 간신배의 탄핵을 입고 조각배에 몸을 실은 처지에서도 “중천의 햇빛을 검은 구름이 가리었다”며 나라의 장래를 걱정했고, 백의종군의 푸대접에서도 대첩을 거둔 이순신도 선비정신에서 빚어진 나라사랑의 본이었다.
선비정신이란 단순히 유교적 교양을 갖춘 사대부(士大夫) 정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 완성을 위해 끊임없이 학문과 덕성을 키우며 대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을 말한다.
이렇듯 선비는 이 시대 우리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이자 그 정신이야말로 만고에 길이 이을 표상임에 틀림이 없다. 따라서 본분과 사명을 목숨으로 섬기며 받드는 선비정신이야말로 비단 개혁의 선봉장일 뿐 아니라 사회의 거울이다. 정의에 살고 명분에 움직이는 선비정신, 바로 국민소득 3만불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되찾아야 할 정신임에는 틀림이 없다.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올곧은 선비정신을 되찾지 않고는 세계화도, 미래화도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