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이 사는 곳을 사제관이라고 합니다. 몸과 마음의 쉼을 위한 공간입니다. 보통 사제관은 넓습니다. 혼자 살기가 거북할 정도로 넓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제가 편안하게 몸을 쉴 수 있는 공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의 넓이도 작습니다. 그런데도 넓고 크게 사제관을 짓는 이유가 무엇일까요?사제관은 주택에 가깝습니다. 잠시 머물다 가야 하는 공간으로써 주어진 임시 머물음을 위한 공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제관을 저의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사제관은 여관과 비슷합니다. 사제관의 구조에 따라서 저의 동선을 결정해야 하니 그렇습니다. 주택으로써 주어진 사제관, 크고 넓어야 하는 이유인가 봅니다.그런데 가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제관에 설치된 기기와 가구의 위치를 변경시키거나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넓은 공간을 작은 공간으로 바꿔야 합니다. 있어야 하는 최소의 것만 갖춰야 합니다. 그런데 쉽지 않습니다. 주택으로써의 공간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집이 아닌 주택에서 살아야 합니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우리 신자분들은 주택에서 살고 있을까 아니면 집에서 살고 있을까? 손가락만 움직이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킬 수 있는 주택을 좋아할까 아니면 조금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집을 좋아할까? 자동차가 몸의 움직임을 퇴화시키고, 이른바 완제품이 사람들의 창조성을 둔화시키는 시대입니다. 손가락 하나로 원하는 모든 것이 충족되는 공간, 이런 공간에서 사는 것이 축복일까요 아니면 불행일까요? 여하튼 저는 주택이 아닌 집에서 살고 싶습니다.임상교(대건안드레아) 주임신부(천주교대전교구 청양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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