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순이와 함께 우성산에 갔습니다. 목줄을 짧게 잡고 산에 오르는 과정이 쉽지 않습니다. 중간 중간에 넘어야 할 관문이 많습니다. 마당에 나온 닭에 관심을 보이는 호순이의 호기심에 긴장해야 하고, 이웃집에 매여 있는 개들의 반가운 안부소리에 반응하며 힘을 사용하는 호순이의 완력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목줄을 강하게 잡아채기도 하고, 혼을 내면서 산에 올라갑니다. 뛰고 싶은 욕망으로 가득찬 호순이의 마음을 알면서도 쉽게 목사리를 풀어주지 못합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길없는 길을 찾아서 내려옵니다. 성당 마당으로 직행하는 방향을 정하고 없는 길을 만들면서 내려옵니다. 그때서야 목줄을 풀어줍니다. 주인의 발 속도에 맞춰서 신나게 산비탈을 내려가는 호순이를 바라봅니다. 공을 가지고 노는 몇시간을 빼면 늘 현관문 앞에 묶여 있습니다. 미안해집니다. 넓은 공간이 있다면 풀어놓고 자유롭게 뛰어 다니게 하고 싶은데 ..... 공놀이를 위해서 목줄을 풀어주면 호순이의 얼굴이 변합니다. 성당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냄새를 맡습니다. 그러다 공을 던져주면 재빨리 달려가서 공을 물고 제 앞으로 옵니다.가끔 호순이를 보면서 `자유`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그리고 `자유`의 상태인 `다움`에 대한 성찰을 합니다. 자유는 묶임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자유는 개념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유는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는 구체적 인간이 지금 여기에서 추구하는 방향성을 의미합니다. 목표가 아닙니다. 지속되어져야 하는 삶의 방향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가치의 실천과 과정으로서의 결과를 경험하면서 행복을 느낍니다.행복의 경험을 지금 여기에서 불러내봅니다. 그리고 알 수 있습니다. `다움`을 유지했을 때 행복했습니다. 다른 이들의 요구와 기대에 따른 행동했을 때, 불안했고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인정을 받고 칭찬을 들었을 때도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가치에 따른 선택을 했을 때, 그 선택이 세상에서 주목받지 못해도 행복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 안에는 늘 `통합된 나`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 다움`을 느꼈습니다.묶이지 않은 상태의 삶을 살려고 노력합니다. 가야하는 곳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곳을 가든 나는 `나 답게` 살고 싶습니다. 나의 자유를 박탈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은 오직 나입니다. 결코 다른 사람들이나 환경이 아닙니다. 내가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유인으로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금의 한국사회는 자유인을 양성하지 않고 노예를 키워냅니다. 한국사회에서 자유인으로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돈과 권력, 외모, 이미지, 상품, 인맥 ...한국사회에서는 성공이 곧 자유입니다. 성공하지 못하면 자유를 살아가기 힘듭니다. 성공의 깃발 아래서 사람들은, 강제와 통제를 위한 목줄로 묶여서 노예가 됩니다.자유, 포기할 수 없는 가치입니다. 주님의 자유로움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임상교 주임신부(천주교 대전교구 청양본당)